얼쑤 거창

거창, 원말흘 봉명대

아림신 2011. 8. 28. 00:11

 

지난해 여름 한 날 마리면 말흘 마을을 지나쳐 산을 오른 적이 있다.

원말흘 마을을 빠져 나와 산길로 접어들기 전 좌측 논 경계에 웅장한 바위 몇 덩어리가 앉아 있는데,

바위 가슴에 붉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 게 보였다.

함께 간 사람의 채근으로 바위 가까이 가불 수가 없었다.

늘 그게 아쉬웠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가 볼 수 있는 거리지만 차일피일 미뤘다.

아니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말이 옳다.

나는 그 바위의 생김이나 새김 글씨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아마도 그 옛날 화림동, 농월정 그리고 영승, 수승대를 오르내리던 선비들의 풍류자리의 한 곳으로 여겼다.

진산 삼거리에서 위천 방면으로 우회전 하는 즉시 좌회전을 하면 마리초등학교 앞을 지나게 된다.

왼편으로 샛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막다른 곳에 원말흘 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는 큰 느티나무가 떡 하니 버티고 서서 오가는 이들의 행색과 동태을 살핀다.

수상쩍다 싶으면 냅다 호통이라도 칠 기세다.

 

 

원말흘 마을 들머리부터 둥글고 시커먼 바위들이 논 가운데와 밭두렁 그리고 담벼락 밑과 길모퉁이에 박혀 있다.

저 바위들 격정의 시간, 인고의 시간들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았으리라.

그러고도 침묵으로 박혀 있으니.

'바위'같은 아니 산적이라도 좋으니 '바위;같은 사람 좀 만나봤으면 좋겠다.

솥뚜껑 같은 손을 가진,

천근 바위처럼 묵묵한 사람.

없는가.

내눈이 부실한지, 마음이 협소한지  좀체 보이질 않으니.

 

 

색상이야 세월의 때가 묻어 시커멓지만, 모난 곳 다 사라진 정감 가는 바위들.

 

 

어떤 풍류 자리인지 궁금하였으나 차를 세워 두고 근사진부터 몇 장 찍었다.

 

 

 

 

카메라를 안고 바위 앞으로 다가 서서  가슴께에 새긴 글씨부터 보았다.

봉명

얼마나 거창한 명명인가.

 

 

 금방이라도 산천이 떨 울음 소리 내며 날게 펴는 봉황의 모습이 담긴 필체이다.

머뭇거림 없는, 우아한 힘이 등천할 듯 바위를 어르고 있으니 보는 내 가슴도 덩달아 하늘 나는 듯하다.

 

 

다시 주위에 새겨놓은 글씨들을 읽었다.

김씨 일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제단 글씨를 보고서야 이곳은 만인들의 풍류처가 아닌

청도 김씨들이 조상을 모시는 제단 바위란 것을 알았다..

 

봉명대

그렇게 이름 붙여도 마당한 장소다.

구만리 밖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요

봉황이 내려 앉으ㅕ 장소의 울음을 뽑기에 가히 넉넉한 너럭바위이라 봉명대라 일컬어도 광오한 곳이 아니다.

봉황은 원래 오동나무에 앉는다고 했다.

담양 소쇄원에는 봉황대가 있다.

소쇄원의 봉황대는 그곳 유림들을 대신하여 큰 뜻을 펼칠 대붕 같은 인재를 기다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곳 원말흘 청도 김씨 문중의 봉명대 염원 또한 그와 같지 않을까.

문중을 빛낼 대붕 같은 인재를 바라며 조상들을 모시는 제단을 봉명대라 명명하였으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으니 그 뜻이 반드시 하늘에 가 닿으리라 믿는다.

 

 

 

특정 문중의 제단이 아니라면 안주 몇 점과 말걸리 두어 병  챙겨 들고

몇 몇 작당하여 신선놀음 한 번 했으면 싶은 곳이다.

그러하면

그러하면

잠시라도 세상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