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쑤 거창

갈천서당

아림신 2011. 8. 27. 14:24

 

 

올 여름은 비로 시작하여 비로 끝났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오늘도 하늘 가득 비를 품고 있으니 비가 끝났다 할 수 없다.

태풍까지 올라오고 있다니 여름 비의 끝은 진행  중인 셈이다.

농사꾼들은 여전히 하늘을 보며 걱정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한 마음 때문인지 매미들의 짝 찾는 소리는 예년보다 유난했다.

2주 만의 짧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리라.

비가 오거나 말거나 짝을 찾는 소리로 귀청을 얼얼하게 만들만큼 격정적이다.

매미소리를 안고 북상면 갈계리에 있는 갈천서당을 찾아갔다.

갈천서당은 북상면사무소에사 한 마장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송계사 가는 길을 가다보면 갈계마을 앞 도로 옆에 표지판이 보인다.

 

 

송계사에서 위천 방향을 보며 찍은 표지만.

그러니까 북상으로 가는 방향 왼편에 갈천서당이 있다.

 

 

  옛날 같으면 이즈음 서당에 다니는 학동들은 물가로 나가 천렵을 하며 더운 여름날을 피하곤 했으리라.

세월 따라 세상도 변하여 서당에서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과 소학을 익히던 학동들은 모두 초등학교 체제로 바뀌었다.

다행스럽게 서당 옆에 북상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갈천서당은 그 옛날과는 다른 아이들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위안 삼지 않을까. 

200여 미터 정도 논길을 따라 걸어가면 맞배지붕의 솟을대문과 만난다.

 

 

솟을대문 입구에서면 정면에 서당본체가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서당은 학동들을 가르치는 학당이다.

그러니까 강론을 겸하던 대청 강당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한 칸, 오른 족에 두 칸 짜리 구들방을 둔

정면 다섯칸, 측면 한칸 반인 목조 기와건물이다.

마당 왼편에는 갈천(葛川) 임훈(林薰)과 그 아우 임운(林芸)의 신도비가 서 있고

우측 담장 중간에는 사택으로 나가는 협문이 빗장을 풀어 놓고 있다.

 

 

 

 

새로 단 툇문의 격이 떨어진다.

 

 

 

 

협문을 나서면 사택이 보인다.

이곳에는 누가 거차를 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 집은 처마가 상당히 길다는 게 큰 특징이다.

또한 우진각 지붕을 한 이 건물의 높이도 일반 한옥보다 높다.

낮은 기단에다 대청은 높고

종도리가 짧으니 추녀 길이는 상대적으로 길게 뺐다.

집의 형태는 장사각형에 가까워 건축 구상을 한 대목수의 머릿 속이 궁금하다.

 

 

화장실

 

강당 아래 댓돌에 서서 삼문을 바라본다.

지금은 시야가 가려 바깥 모양이 성기지만

그 옛날에는  먼산은 사계절을 보여 주었을 것이고

산 아래 강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눈길을, 발길을 붙들었으리.

시상 떠 올라 한 수 적어 읽으면  

지나던 새들도 담장에 앉아 주인 객 없는 시간을 보냈을 자리다.

임훈 선생과 그 아우의 후학 지도 열의와 인품이 밴 서당에서

군내가 나는 것은 아쉽다.

구들방 불도 더러 때주면

힘겹게 버티는 서당도 벌떡 일어 설 것이고

그 집에서 세상을 내다보던  분들의 영혼 또한 평안하지 않겠는가.

아궁에에 막걸리 통과 병이 나뒹구는 모습이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들의 현주소를 보는듯해 안타깝고 노여운 마음까지 들었다.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목조 와가 건물로, 1573년에 건립되었다. 조선 명종 때 6현신(六賢臣)의 한 사람인 갈천(葛川) 임훈(林薰)이 후학양성을 위하여 아우 임운(林芸)과 함께 건립하였고, 1878년(고종 15)에 후손들이 고쳐지었다.

건물은 강당과 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로 된 맞배지붕이고 양측에 풍판(風板)을 달았다. 처마 밑에는 그 당시 사용하던 큰북의 외통이 걸려 있다. 대문은 맞배지붕의 솟을대문이며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임훈과 임운 두 형제의 신도비(神道碑)가 나란히 있다.

임훈은 광주목사를 지냈고 장례원(掌禮院) 판결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낙향하여 후학양성에 힘썼다. 또 부역제도와 군정의 폐단을 시행하려고 노력하는 등 백성을 사랑하는 목민관으로서 추앙받았다. 임운은 이황의 문인으로서 경사를 비롯하여 지리·율려·산수에 능통했다. 형과 함께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