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쑤 거창

천년을 거슬러 -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을 만나다

아림신 2011. 8. 27. 09:15

 

 

비 오는 풍경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비 소리만 들어도 몸써리, 응기난다.

탄저병이 든 고추를 살릴 방도를 뻔히 알면서도 때를 놓쳤다.

오는 비를 막을 방법이 없어 병 깊어가는 고추를 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고추 농사는 망했다.

게다가 쪄 놓은 참깨는 들판에서,

처마 밑 담벼락에서 비닐을 뒤집어 쓴 채 날 들기만 기다리고 있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비닐을 들치고 참깨 꼬투리를 건드려본다.

연일 습기에 갇혀 썩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만 조릴 뿐이다.

비는 투둑투둑거리다가 가다렸다는 듯이 쏟아지고 투투둑 거리기를 반복한다.

어제도, 오늘도.

 

에라, 나가자.

 

이런 날 집안에 죽치고 있어봐야 뾰족한 수도 없다.

더구나 올 들어 유독 몸이 약해지신 어머니와 마주하고 있으면 근심만 주고받을 뿐이니.

 

위천면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을 찾아갔다.

위천 수승대를 지나 북상 방면으로 2KM정도 가면 왼편에 농산교가 보인다.  

 

 

농산교  위에서 위천 수승대 방향으로 흐르는 물을 보다.

수억년을 흘렀을 저 물은 메마르지 않고 어제와 오늘을 잇고 있다.

"강물 같아라."

'강물처럼'

일상에서 숱하게 들어 온 말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강물을 보며 사람살이의 신의와 믿음의 언표나 상징으로 삼고자 한 것일터.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골짜기 계곡을 굽이굽이 흘러온 강물이다.

오다가 큰 돌에 부딪히는 고통 있었으리라.

같이 손잡고 흐르던 친구의 손을 놓아야 할 때도 있었으리라.

같이 떠났으나 먼저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아야 할 때도 있었으리라.

저 투명한 물빛.

바닥까지,

있는 그대로 흘러온 저 강물은 말한다.

이기고 지는 일 아무런 의미 없다.

앞서거나 뒤서거나 그 무애 한탄인가, 안달인가.

그렇구나.

그러니 속 다 드러내며 흘러도 저리 맑구나.

맑고 맑구나.

 

 

농산교을 건너 우회전하여 잠시 달리면 곧 농로와 나뉘는 네거리 길이 나온다.

길 놓칠 일은 없다.

네거리에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안내판이 서 있다.

표지판 지시대로 죄회전을 한다.

 

 

잠시 가는 듯 달리면 곧 농산리 석불입상의 위치를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아래 간판은 위천시내에서 동계 정온선생님 고택과 마황마을 앞길을 지나온 길에서 찍은 것이다.

 

 

간판 맞은 편에 간이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간판 방면을 바라본다.

당황스럽다.

간판이 가르키는 곳은 산 속이다.

가는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비 오다 말다 하는 논길 산길을 표지판 따라 걷는다.

 

 

간판 우측 그러니까 산과 논이 만나는 곳이 여래입상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 옛날,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그날의 길은 이러지 않았으리라.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리라.

 

 

그날의 길은 들이 되고 산이 되었다.

들로 변하고 산으로 변했다고 하여 어제와 오늘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오래 되지 않은 저 잡목들 깊은 곳에는 풍경소리, 염불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등불 켜는 소리 그대로 들어 있으리라.

그리움이 깊을수록 사무치는 마음 큰 것이니,

어찌 잊고 있을 수 있으랴.

언젠가는 저 나무와 풀들의 가슴에, 정수리에 새겨진 불심이 우뚝 살아나

여래의 진리가 불기둥처럼 일어설지.

 

 

 

 

산길이 끝나는 곳에 광배를 두른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이 보인다.

여기를 다녀 간 사람들은 모두 등 돌린 여래입상이라 말한다.

여래가 어찌 세상을 등질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보이는, 보는 대로, 본대로 말한다.

여래는 부처의 다른 이름이며 종교적으로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본신이다.

여래가 등을 돌린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낸 길을 따라가서 보니 등 돌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불가에서 보면 몇 백년이나 천년이나 하는 것은 아주 짧은 ,하찮은 시간 개념이다.

인연을 말할 때도 겁劫을 말한다.

인도에서는 범천의 하루 즉  우리 인간계의 시간으로 바꿔 말하면 4억 3200만년에 달한다.

인간의 일상과는  다른 차원의 시간 개념이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이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홀로 지낸 시간은 찰나의 시간도 아니다.

이 석조여래는 하품 한 번 한 시간도 안되는, 그런 시간을 홀로 있었을 뿐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실제 변한다.

천년의 시간을 꿋꿋이 서서 변함없이 웃고 있는 여래의 표정을

단순히 돌로 깎은 것이라 내칠 수 있을까.

저 가슴,

저 돌 속에는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을 위로할 심장이 뛰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옆 모습이 날씬하다.

 

 

광배를 두른  온화한 미소를 보라.

사람들의 세월과는 무관한 넉넉한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가.

 

 

 

 

 

                                                                                                 얼짱 각도로 본 여래상

 

 

 

 

 

 

 

세월의 끝에는 또 다른 세월이 기다린다. 그 세월 다음에는 또 다른 세월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그렇게 보면 사람살이 일생은 세월도 아니다. 그 찰나의 시간을 살면서 영달을 위해 권력을 얻고자 부와 명예를 갖고자 하루를 열흘처럼 사는 지금의 모습은 허상이 아닐까. 이런 허상을 좇는 동안 겪는 번뇌며 고통이며 배신이며 안달이며.

얼마나 고단한가.

농산리 석보여래입상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세월에 드러내놓고 부질없는 가치를 좇는 우리 일상에 가르침을 주고자 서 있는 반면교사로 여긴다. 참배객들이 줄 지어 있었을 그 자리는 잡목 숲으로 변했다. 세상의 가치는 세월 따라 바뀌기 일쑤이고, 그로 인해 그날의 영광이나 영화는 오전의 안개와 같이 허망할 수 있으니. 무상한 일상에 허덕이는 우리의 오늘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로 서 있는 게 분명하다.

세월이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월이라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과 다름없다. 그 이상의 의미가 되려면 고집이 필요하다. 사회와 이반하지 않는 자기의 가치관을 붙들고 꿋꿋이 살아내는 것이다. 천 년의 세월을 뚝심으로 서 있는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처럼.

 

 

   

천 년을 산 속에서 보낸

석조여래입상의 들녁은 어디일까.

그 많았을 불자들 떠난 자리에 서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믿는다.

사람의 손에서 나왔으나 사람의 것이 아닌 여래께서

또 다른 세상을 구현하고 있다는 것을.

여래의 세상에는 빈부귀천없이

인간존엄이 강물처럼 흘렀으면 싶다.

그런 간절함을 가슴에 안고 돌아서 나왔다.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산53

통일신라시대

 보물 제 1436호 (2005.07.07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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