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기

죽을 뻔 했다.

아림신 2011. 12. 31. 01:05

 

산삼 씨를 심다가 약초로 보이는 줄기의 뿌리를 캐봤다. 

뿌리를 캐고 보니 녀석의 눈매가 여간 사납지 않다. 보고 있다가 무슨 맛일까 싶어서 반을 물고는 '으적' 씹었다. 

산에서 만나는 이상한 풀이나 뿌리는 이렇게 씹어서 기억을 한다. 

그렇게 그날도 처음본 뿌리의 맛을 보고 기억코자 깨물었다. 

엄청 썼다. 

익모초만큼 쓴맛인데 약간 매운 듯한 낯선 쓴맛의 독한 느낌이 있어 얼른 뱉었다. 

금세 입안과 입술이 얼얼해졌다. 

침이란 침 다 짜내서 뱉었는데도 점점 혀끝과 입술이 얼얼해져 왔다.

조금 있으니 뿌리를 씹은 부위에 마비 증상이 왔다.

마치 치과에서 마취 주사를 맞은 느낌. 

말도 어바리처럼 데데하게 나왔다. 

이 증상은 그날 저녁을 먹고 난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며칠 뒤 산삼 씨를 심던 중 그날의 약초가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한 포기씩 캐면서 그 동네에서 오신 할머니들게 여쭸더니 한 할머니가 번개같이 내려오셨다.

그리고는 미처 캐지 않은 뿌리를 캐기 시작했다.

“이 넘 이름이 뭡니까?”

“......”

대답은 않고 마저 캔 다음 나를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대뜸,

“어디 쓸꺼요?”

하셨다.

“무슨 약촙니까? 씹었다가 죽는 줄 알았어요.”

“촉우”

“네”

“촉우라요.”

“약초는 약초네요?”

“안 쓸라믄 내가 가져 갈끼고요.”

“아입니다, 줘 보이소. 연구 좀 하구로요.”

순간, 그 할머니 얼굴에 아쉬움이 후욱 지나갔다. 마지 못해 포기하듯 내 손에 쥐어 주시면서 협박성 미련을 놓고 가셨다.

“그거 잘 못 묵으면 죽어요. 그것 먹고 뜨거븐 것 먹으면 바로 죽어요이.”

 

촉우!

촉우는 이곳에서 쓰는 약명, 알아보니 <초우>라는 약초였던 것.

속명으로는 <부자, 생부자, 토부자>라는 약초명으로 통용되었다는 것도.

어릴 적 돌아가신 조부님은 말년에 해소가 심하셨다. 하루는 조부님이 통시에서 쓰러지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집집마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던 <부자>를 해소 치료용으로 많이 드셔서 그랬다고 들었다.

 

알아두자, 초오,

이참에 익혀놓자, 부자!

 

그렇다.

그 넘 뿌리는 초오지만 지상부는 아름다운 보라색의 꽃을 가지고 있어 관상용으로도 심는, 투구꽃.

이 넘의 뿌리를 두고 한방에서 쓰는 명칭은 숱하나 흔히 <초오>라 불리는 약초였다.

그러다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란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었다는 것도 생각났다. 김탁환의 장편소설인 <열녀문의 비밀>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소재로 쓰였다는 것도.

맛도 없는 독, 사약으로도 쓰였다는 투구꽃, 그 뿌리 초오.

한 여름이거나 하여 꽃이 피어 있었다면 투구꽃이라는 것을 알았을 수도 있었을 터.

 

좀 더 자세히 알고자 네이버 백과사전을 검색했다.

요동(遼東)의 변방 밖에서는 가을이 되면 초오두(草烏頭)의 즙을 내어 햇볕에 말려 독약을 만들어 짐승을 사냥할 때 사용했으므로 사망(射罔)이라고도 하였고, 냄새가 없고 혀를 마비시키며 맛은 몹시 맵고 쓰며 성질은 뜨겁고 독이 많다고 적혀 있다.

 

이런 초오를 겁도 없이 깨물었던 것이니.

 

백과사전에는 <초오>는 속리산 이북 깊은 골짜기에 자생한다 적혀 있다. 이를 보면 가야산 뒷골 가북이 얼마나 깊은 골인지 짐작이 되고도 남으리라.

어쩌면 가야산 뒷골은 속리산 이북보다 더 깊은 골일 수 있다 여긴다.

가북이라는 지명을 살펴봐도 그렇다.

가북은 한자로 加北이라 쓴다.

北에 北을 더한다.

여기서 쓰인 북의 뜻은 깊다라는 뜻이 더 크지 싶다.

가북의 골이 얼마나 깊었으면 속리산 이북에 자생하는 <초오>가 거창 가야산 뒷골 가북에서 자랄까.

 

거창의 또 다른 끝 거창 가야산의 뒷골에서 만나 <초오>

나는 너를 잊을 수 없다.

아니 잊지 못한다.

 

 

 

                      

 

 

                    초오 뿌리를 올려놓습니다.

                    잘 기억하셨다가 함부로 씹거나 먹지 마세요.

                    가는 수가 있습니다, 남들 보다 일찍. ^^    

            

 

 

 


'농사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 어쩐다.  (0) 2011.12.03
올 고추 농사, 한숨으로 접다.  (0) 2011.08.25
범인을 잡다.  (0) 2011.08.18
새들과 전쟁  (0) 201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