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 씨 심는 일, 겨우 하루했는데 하늘 눈치만 본다.
비 온 다음 날 거창읍에서 일꾼 셋을 태우고 산삼 밭가는 길목 마을로 갔다.
마을 할머니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문간에 모여 계신다.
“산엔 못가지 싶소만......”
“거러엄,
다른 할머니가 거드신다.
“여긴 눈 한 번 오면 계속 벌충이요.”
그러니까 한 번 눈이 오면 그때부터는 녹는 것이 아니라 계속 쌓인다는 말.
어쩐다.
“눈 덮힌 산길 미끄러븐 것도 걱정이지만 낭구 우에 눈이 쌓여 일을 못해요.”
하, 어쩐다.
집 주인 할머니가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씩 하며 이야기 하자신다. 동네 놉들과 거창에서 온 놉과 함양 수동에서 온 놉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간다.
주위는 온통 눈밭이다. 가야산 뒷자락도 하얗고 산삼 밭으로 가는 길목도 하얗다. 에라 모르겠다. 사진이나 몇 컷 찍자.
감이 그냥 달려 있네요 했더니 감딸 사람이 없어 그렇다신다. 하, 어쩐다.
오미자 밭도 새하얗다.
노박덩굴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있는데, 도대체 그것 거두어 올 시간을 못 내겠다.
새벽별(과장^^) 보고 나갔다가 산길 내려 오면 달 그림자 으슥하니. 눈 앞에 보물을 두고도 매일 지나쳐온다. 하, 어쩐다.
집 주인 떠난 감나무에도 감이 그냥저냥 달려있다. 제법 오래 쳐다보고 있었는데, 건들거리는 양이 죄 포기한 모습이다.
언젠가, 누군가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 굴뚝에 연기 다시 나고 기울던 기둥 다시 일어나는 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 오면 아마 감나무도 건들거리지 않고 다시 쨍쨍 하리라.
이 집 또한 그러하다. 쓸쓸함이 구석구석 배어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발길을 돌렸다.
눈물이야 얼마든 같이 흘릴 수 있겠다만, 눈물 마르고 나면 어쩌나. 나는 그게 두려워 이 집 또한 슬그머머니 비켜나왔다.
이 집은 어떻고? 매 마찬가지다. 슬픔이 만삭이다.
뼈만 남은 몸으로 무얼 기다리고 있을까. 뼈만 남은 기둥 사이로 희망의 볕이 들었다 금세 나가버린다.
버팀의 끝이 뜻대로 되었으면, 정말 그러했으면 싶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집 떠난 주인 돌아올날 기다리는 저 마음을 무엇으로 달래랴, 위로할 수 있으랴.
따뜻한 커피를 마셔도 갈 길 놓친 사람들의 속은 풀리지 않고,
주인이나 놉이나 속 타는 것은 마찬가지.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참 때 먹으려고 준비해둔 막걸리와 소주를 꺼내온다.
집 주인 할머니는 금세 두부를 지녀 내오시고,
돼지고기 수육을 꺼내 오신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을 실감하며 댓바람에 소주와 막걸리로 속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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