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전날, 거창에는 비가 내렸다.
연합회 임원들은 긴급회동을 하여 애초 가조 고견사 뒷산인 의상봉을 오르는 산행 계획을 수정하여 고견사에서 행사를 마치는 것으로 공지하였다.
일기 불순으로 산삼 씨 심는 일을 하지 못하여 마음은 다급한데다
집에서는 김장을 하는 날이라 몸을 빼자니 여간 눈치 보이는게 아니었다.
일할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일손 돕는 척하다가 대충 배낭을 챙겼다.
등산 가방을 메고 나서다 어머님한테 딱 걸렸다.
"야야, 어데가노?"
"아예, 오늘 귀농인 산행대회가 있어서요. 거기는 꼭 가야 됩니다."
그러고는 고견사로 줄행랑쳤다.
뒤통수에서 어머님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그, 이런 난리통에 가장이 집을 비우다이, 쯧즛쯧."
당연히 점심을 챙기지 못했다. 가조에서 김밥집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막걸리, 물 등을 사서 배낭에 구겨 넣고는 고견사로 갔다.
고견사에 차를 세우니 연합회장님의 전화가 왔다.
"어데요?"
"고견사 주차장이네."
"아, 그러면 누룩재님 곧 도착한다니 같이오시죠."
한다.
어슬렁거리다 보니 가게에 낯익은 얼굴이 막걸리통을 차고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우림천사다.
가게 안에는 북상에서 오신 신은범님과 또 베이 안미자님과 산원님, 우림천사 이렇게 넷이서 산행 출정식을 하고 있었다.
잠시 끼어 한 잔 하고 있는데 누룩재님 부부를 만나 산원, 우림천사와 함께 가게를 등지고 앞서간 사람들을 좇아 부지런히 산길을 탔다.
그러나,
여기서 빗나가기 시작했다.
고견사 가는 길을 잡은 게 아니라 우두산 가는 길을 잡았던 것이다.
아, 오십 평생을 살아내면서 숱하게 길을 비켜 타봤건만, 그때마다 뼈아픈 고통을 느꼈건만 오늘 다시 함께 가는 길이 아닌 곁길을 타고 말았으니.
오호, 통재라, 애재라.
처음 다섯의 발걸음은 씩씩했다. 그러나 이정표를 만나 얼마를 걷다가 산원님의 안티를 받았다.
“이 길이 아닌듯합니다.”
“그람?”
“공지에 최종 집결지가 고견사라고 했어요.”
“그람?”
“내려 가서 고견사로 가서 합류해야지요.”
“어쩐다?”
때마침 산행 온 등산객들이 우리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주었다. 우두산으로 가도 고견사를 갈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다만 거리가 좀 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힘은 무서운 법,
그들의 의견을 좇아 우두산으로 가서 고견사로 가자는데 합의를 하고 또박또박 산길을 접기 시작했다.
결국 우두산 오부 능선쯤서 누룩재님 부부와 산원님은 왔던 길을 되짚어 하산, 나와 우림천사는 꿋꿋이 우두산 정상으로 길을 잡았다.
거창군 가조면 모습이다. 사방을 한 컷에 담았으면 좋으련만. 가조를 들러서거나 들여다볼 때마다 느낀다. 언제 눈여겨 보시라. 가조를 에워싸고 있는 산들은 신령스러운 기운이 인다. 신화적인 냄새가 물신거린다. 풍기라는 고을도 이러한 느낌이 있으나 가조에는 못 미친다.
아, 뼈사이를 지나가는 산바람.
좌우 서 있는 바위 모습에서 망부석의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 두 바위의 모습이 의상봉이 전하는 전설의 증시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설화의 연오랑세오녀도 의상봉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이 있다.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우두산 의상봉을 저 앞에 두고 걷자니 다시 마음이 다급해졌다.
우두산 정상 가까이 이르자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온 바람과 바람소리가 맞아주었다. 우두산 정상이 보이는 자리에서 막걸리 한잔씩 나눠 마셨다. 더 머물고 싶었으나 땀에 젖은 몸이 춥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멀리 의상봉 정상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틀림없는 우리 일행이라 여기고 날 다람쥐보다 빠르게 산길을 탔다.
조물주가 만든 석부작
우두산 방면에서 본 의상봉이다.
천하의 꽃과 같이, 정수리 같아보이지 않는가.
의연한 기개가 느껴지지 않는가.
의상봉을 오른 일행과 연신 전화를 했으나
아직 만나지 못하고 둘은 다시 의상봉 정상으로 향했다.
아, 여기가 거창이다. 저 깊은 골마다, 봉우리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선인들의 모습이, 웃음 소리가 탄식이
들려오는 듯하다.
꿈이 자라 아니 꿈을 그리다 산이 된듯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서로의 위치를 묻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났다.
의상봉 아래서.
이슬님, 허벅지 쥐가 나서 잘 걷지를 못하자 송산머슴님이 급 처방을 하시고
회장님은 스프레이 물파스를 뿌려 근육을 풀었다.
여럿의 마음이 통하자 이슬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날아내려 가시더라..
졸리고, 내일 새벽에 길 나설 생각하니 대충대충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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