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창고

양양 낙산사 발굴조사보고서 발간

아림신 2008. 9. 7. 18:05

 

 

 

양양 낙산사 발굴조사보고서 발간
- 원통보전 및 주변지역 정밀 발굴조사 -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에서는 지난 2005년 6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실시한 낙산사 발굴조사를 완료, 금년 발굴조사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낙산사가 2005년 4월 발생한 강원도 지역 산불로 소실된 지 3년만의 일이다.

낙산사 발굴조사는 원통보전(중심 법당)과 그 주변지역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로서 낙산사 사역이 변화되는 과정을 밝히고 건물지의 정확한 규모와 위치 등을 파악하여 낙산사 복원의 고증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중심 건물지(현 원통보전)는 고려시대부터 2005년 4월 산불로 소실되기 전까지 5시기에 걸쳐서 중창되었으며 조선시대 세조 때 최대 규모였음을 밝혔다. ‘조선왕조실록’에 전하는 바와 같이 당시 왕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으면서 번성했던 낙산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중심 건물지를 비롯하여 그 주변 지역 8기의 건물지는 김홍도가 관동팔경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린 사생도 중 하나인 ‘洛山寺圖(1745~1800년?)’의 건물지 배치 형태와 유사하여 18세기 낙산사 가람 배치 형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유물은 통일신라,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량의 기와 및 도기, 자기 등이 출토되었다. 명문 유물로는 ‘成化三年’[세조13년(1467)]명 암막새편을 비롯하여 고려시대의 ‘洛山寺’명 기와, 조선시대의 ‘洛’자명 백자 등이 확인되었다. 또 연화문 암·수막새, 귀목문 암·수막새, 봉황문 수막새·용문 암막새, 연화문 수막새·‘皇帝萬歲’명 암막새, ‘梵'자명 수막새·가릉빈가문 암막새 등 모두 6세트의 막새기와가 출토되었다.

그동안 문헌기록을 통해서만 전해지던 낙산사는 이번 발굴을 통해서 통일신라,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면서 현재까지 법맥을 유지한 천년 고찰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이번 『낙산사 발굴조사보고서(2008)』가 낙산사 사역의 복원에 충분히 활용되고 또 건축학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도 뜻 깊은 자료로 이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붙임 : 사진자료


낙산사 발굴조사보고서

낙산사도(김홍도, 1745~1800년)

봉황문 수막새, 용문 암막새

‘洛山寺’명 기와

‘皇帝萬歲’명 암막새


담당자 :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 이인숙, 신희권
전화번호 : 02-720-7068